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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마을 영모재(永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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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양옥
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3-11-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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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자리에 운암서원을 철폐한 후 1933년에 건립하였던 송제민의 재실 영모재(永慕齋)가 있었는데 현재는 운암서원 안에 영모재(永慕齋)가 들어서 있는 형태이다. 

영모재(永慕齋)에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송제민(1549~1602)과 아들 송타(1567~1597), 사위 권필(1569~1612)및 제봉 고경명의 사촌동생이자 조선 선조 때의 유생인 창랑 고경리(1559~1609), 신필, 신한주를 모신 사우이다. 

송제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천일, 양산룡, 양산숙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덕령 휘하에 들어가서 활약했으며 1789년(정조13)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指平)으로 추증되고 북구 운암동의 운암사에 배향되었다가 1868년(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운암사가 훼철되자 지역 유생들이 송제민을 모시기 위하여 1933년 송제민의 묘소가 있는 현재 자리에 영모재를 건립하였다.

 

아들인 송타의 자(字)는 시정, 호는 화암으로 송제민의 네 아들 중 첫째로 운암동에서 출생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무안경계에서 사로잡혀 경상도 한산해안에 이르렀을 무렵, 배 안에 왜인보다 우리나라 포로가 많고 배가 고립되어 인근에서 구원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배에 탄 포로와 함께 왜장을 모두 베고 노를 저어 돌아오던 중, 칼에 맞아 바다로 떨어진 왜병이 헤엄쳐 달아나 고변하여 인근 왜선이 바다를 덮어 추격하자 물에 뛰어들어 순절하였고 1788년(정조12) 사헌부 지평(종 5품)으로 증직되었다.

1994년 영모재가 있는 자리에 운암서원이 건립되고 현재는 영모재(永慕齋)가 운암서원의 부속 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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