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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김동수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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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양옥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3-11-0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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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의병의 활동기간은 1894년 갑오의병과 1895년 을미의병 이후 1907년 정미의병을 이어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약 20년에 이른다. 1895년 을미사변에는 전국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켰고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에 대한 유생 의병장 뿐만 아니라 평민 의병장과 학생, 농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의병이 참여했다.

전라도 광주 출신(북구 우산동 283번지)으로 광주와 담양 등지에서 일제 군경과 친일파를 응징한 김동수도 한말 후기 의병기에 항일투쟁을 전개한 의병장으로 포목상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1907년 고종황제 강제퇴위 이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상실될 위기에 이르자 의병을 일으켰다. 고종황제 강제퇴위와 순종황제 즉위, 또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강제 해산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에 김동수는 이원오, 조경환, 양상기, 김현길 등과 함께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광주 삼각산 죽취봉에서 항일투쟁의 길에 나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광주 출신으로 의병을 일으킨 양진여 의병대에 합진하여 활약하엿으며 양진여의병장의 지휘 아래 양동골, 김성국 등 의병동료 5~6명과 함께 광주, 담양 일대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을 수집하였다.

김동수는 양진여의병장이 체포되어 의병부대가 흩어지자 6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라남도 화순을 근거지로 다시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광주, 담양, 장성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는 부관에 이기섭, 선전병에 선덕현, 도포사에 임윤팔, 임윤오 형제, 도십장에 김재민, 의원(義員)에 양동골, 백학선, 박포대를 임명하였다.

김동수는 1909년 5월 19일, 5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광주 덕산면 덕산에서 광주분견소의 일제헌병대와 접전을 벌여 화승총 10정을 빼앗았고 같은 달 31일에도  광주경찰서 일제경찰과 광주 갑마보면 본촌(本村)에서 교전하였다. 그 후 1909년 9월, 사창(社倉)전투에서  오른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1910년 2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하였다.

지금의 북구 우산동 283번지 주소는 아파트 재개발로 인해 찾기가 힘들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고 반드시 표지석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북구 우산동 한말 의병장 김동수와 북구 중흥동 한말 의병장 양진여, 양상기를 연계하여 최후까지 치열하게 싸웠떤 호남의병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으며 호남인의 긍지와 정의감을 널리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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