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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에 터 잡은 광산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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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양옥
댓글 0건 조회 31회 작성일 23-10-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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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동이 지명으로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1789년 '戶口總數'에서 이다. 본래 큰 마을이라하여 '한실'이라고 부르다가 마을 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一曲'이라 했다.

1795년부터는 '一谷'으로 1801년에 '日谷'이라고 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一洞里'를 병합하여 '日谷'이라고 하고 본촌(芝山)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에 광주시에 편입되었다.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성씨는 광산노씨이고 이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광산이씨 (光山李氏) 11세손인 남(楠: 1603~1653)이 목포 달동네에서 옮겨와 광산노씨와 함께 마을을 이루면서 살았다. 

일곡동에 있는 '한새봉농업생태공원'에 가면  초입 한쪽에 비석군이 있는데  비석들 중 한 곳에 일곡에 터를 잡은 광산이씨 내력이 아래와 같이  씌여있다.

 일곡(逸谷) 남(楠)조상님은 광산이씨 시조 종금(宗金)으로부터 19세손이며 중시조(中始祖)로 득관조(得貫祖)이신 순백(珣白)의 11세손으로 자(字)는 문칙이요 호는 일곡(逸谷)이다. 

선조 계묘년에 출생하여 효종 계사년에 졸하셨다한다. 생전에 열심히 살아가면서 학문을 중시하고 이웃을 계도하였기에 돌아가신 뒤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증식받으셨다.

公의 증조이신 박사공(博士公) 공충(公忠)은 당시 기축사화(1589년)로 인해 가솔들의 멸문지화를 면하려 무안 이노면  달리도(현 목포시 달동)에 숨어들어 三세를 지내 지금도 묘소가 그 곳에 있으며 매년 음력 三월 十일에 제향을 지낸다. 그 후 화를 면하게 된  일곡(逸谷) 남(楠)조상님은 달리도를 떠나 당시 광주부였던 이곳 석제면(石堤面) 일곡(日谷)부락으로 옮겨 터를 잡고 밭을 가니 그 후손들이 광산이씨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일곡(逸谷) 남(楠)조상님께서는 양성이씨와 수원백씨 숙부인을 두셨으며 상용(尙龍), 철운(喆雲), 철립(喆立), 철식(喆植)의 네 아들을 두었고 장남인 상용(尙龍)은 일곡을 중심으로 둘째 철운(喆雲)은 하의도와 영광을 셋째 철립(喆立)은 해남과 함평을 넷째 철식(喆植)은 해남 사동과 강진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번창 오늘에 이르고 있다.

公의 선고(先考)이신 기와 二代조 암호의 三代묘를 광주시 일곡동에 있는 문중 산중에 이장 매년 음력 시월 15일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조상님들의 넋을 모시던 일산재가 일곡지구 재개발로 편입되어 후손들이 애석하게 여겨 일산재가 있던 자리의 주변 토지를 매입하여 현대식 석조건물을 완공,  일곡(逸谷) 남(楠)조상님의 호를 따라 일곡회관(逸谷會館)이라 명명하였다. 2015년 광주광역시가 추진한 한새봉도시농업생태공원 조성공사로 일부 토지가 편입되어 이곳에 광산이씨세장비(光山李氏世葬碑)를 옮겨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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